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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철학을 실천한 在日 實業家 김창인 족장

제주대 200억 ⦁ 도종친회 2억 ⦁ 숭선전 3억 ⦁ 중앙종친회 20억 원 헌성

 

 

17세의 어린 나이에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천신만고(天辛萬苦) 끝에 대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가락 제주출신 종친이 있으니 그가 바로 나눔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재일본 실업가(實業家)로서 주시회사 남해회관(株式會社 南海會館) 대표 취체역(代表取締役) 김창인(金昌仁) 회장이다.

김 회장은 1929년생으로 가락국 시조대왕의 74세이며 입도조 좌정승공의 24세로 안방계(安邦系)이다. 그는 근검절약 실천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자연을 사랑하며 수목에서 인생을 배우는 겸허한 자연주의자로 살아오면서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재일교포 실업가(實業家)로 주위의 존경과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고국 제주를 사랑하고 향토발전에 정성을 쏟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국립 제주대학교에 2백억원을 기부하는 한편 삼중대광 도첨의 좌정승공 만희(萬希) 할아버지 후예로서 가족묘소도 정성껏 단장해 놓았으며, 2009년도에 ⌜가락 제주도 종친회관 건립기금⌟으로 2억원을 헌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2011년도에 김해 숭선전 춘추대제(春秋大祭) 제수비(祭需費) 기금 3억원과 금잔(金盞)세트를 기부하였으며, 2014년도에는 ⌜가락중앙종친회관 매입기금⌟ 20억원을 헌성했다. 김창인 회장은 1929년 제주시 한림읍 귀덕 2리에서 학덕 높은 가문에서 부친 김재선(金才善)훈장과 모친 연주현씨(延州玄氏)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일제 치하의 어려운 시절 어머니가 담대한 마음과 곧은 신념을 심어준 영향으로 산과 나무를 좋아하고 달리기, 씨름을 잘하여 한림초등학교 시절 늘 1등을 하였다.

 

해방 이듬해 1946년 7월 어머니의 별세로 고통과 비애를 떨치고 해방 이듬해인 17세때 일본 대판에 있는 중부(仲父)님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만 해도 우리 경제는 무척 어려워 하루 세끼 끼니 해결마저 어렵던 시절이었다. 김 회장은 어린 나이지만 꼭 성공해서 고국에 보답하겠다는 각오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학으로 학문을 익히면서 청운의 꿈을 키워나갔다. 자동차 수리공, 총제품상(銃製品商), 제화(製靴)사업 등을 경영하며 이국 땅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신화(成功神話)를 만들어 나갔다.

김 회장은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어느덧 김 회장은 장성하여 결혼하였고 부인 한수자(韓秀子) 여사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으며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다.

창공을 나는 새들도 해가 저물면 자기 둥지를 찾는 이치를 보듯 김 회장도 낳아준 부모님과 조상님의 은덕을 사모하며 고국을 찾기 시작했고 드디어 이국만리 타국에서 피와 땀으로 어렵게 일구어 모아 번 돈을 고국에 보답하기 시작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있을 수 없고, 조상없는 후손이 있을 수 없다는 진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고향인 제주에 김창인 회장의 가족묘소가 장엄하게 단장되어 있고 자신의 경영철학과 삶의 신조를 전하는 기념탑 등이 조성되어 있어 고국의 후학(後學)들에게 커다란 교훈과 감동을 주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몸은 비록 일본 땅에 머물고 있어 직접 제향(祭享)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시조대왕과 시조대왕비 춘추대제(春秋大祭)를 받드는 제주(祭需)비용으로 3억원을 헌성했다.

특히 김회장은 ⌜제주대학교 발전기금으로 총 200억원을⌟을 기부하여 후세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 당시 제주대 허향진 총창은 김 회장의 도전정신과 기부, 나눔의 뜻을 기려 현재 교수와 직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창인 회장의 실천 철학⌟을 정규강좌로 개설하고 특별연수회, 정기 낭송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김창인 회장은 당시 김기재 중앙종친회장 취임 후 중앙종친회가 서울의 중심부에 새로운 가락회관을 마련하고 전국 종친 모두가 심기일전하여 종사를 바로 세워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척 기뻐하면서 자랑스러운 가락역사(駕洛歷史)의 복원과 후손들의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함께 뜻을 모아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14년 10월 8일 숭선전 추향대제 후 가락중앙종친회관 매입기금 20억원 기부증서를 김기재 중앙종친회장에게 전달한 식장에 모인 5천여명의 종원(宗員)들은 중앙종친회 역사상 가장 많은 헌성금 전달 소식에 감격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가락종친회와 김창인 족장 만세”를 불렀다.

 

김창인 족장은 그의 법정대리인 양동진(梁東鎭)씨가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파란만장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한시도 고향의 풍경과 부모님에 대한 정과 조상의 음덕(蔭德)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매일 아침 동녘을 향해 자신의 신념과 결의를 다졌고 자기 철학과 정도에 입각한 강인(强靭)한 정신력으로 일관하여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다. 자랑스러운 가락후손(駕洛後孫)들이 나의 체험에서 터득한 인생철학을 참고삼아 새 시대(時代)의 주역으로 나가도록 지도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종인 족장은 “종친회관이 서울의 중앙(中央)에 우뚝선 것은 가락왕손(王孫)의 자긍심(自矜心)을 키우는데 큰 뜻이 있다고 본다. 내인생을 결산하면서 조상숭배의 성(聖)스러운 종사(宗事)에 힘을 보태게 되어 여한(餘恨)이 없다. 앞으로도 700만 종원들이 중앙종친회를 중심으로 화합(和合) 단결(團結)하여 조상님의 영광을 더욱 빛내주실 바란다. 그러기 위해 종원 모두가 자기 능력에 알맞게 회비도 부담하고 행동으로 봉사하여 다함께 복(福) 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기재 중앙종친회장은 답사를 통해 “김창인 족장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모범적이고 정도(正道)로 살아서 크게 성공한 분으로 우리 가락의 천제의 자랑이다.”라고 칭송하고 “어렵게 이룩한 재물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여 가락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라며 족장님 뜻을 깊이 새기고 받들어 우리 종친회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하는 전기를 마련하자“고 역설하면서 이번에 애써주신 김동균 수석부회장, 김대옥 제주종친회장을 비롯한 제주종친회 여러 종친들과 양동진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 중앙종친회는 김창인 족장의 선행을 살아있는 교훈으로 삼아 종사교육 자료 등으로 널리 홍보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제주도 종친회에서는 김회장의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오래 전하고자 애월읍 곽지리 입도조 묘역에 공덕비를 세워 그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이와같이 김창인 회장은 우리 가락 좌정승공파 후손들의 숭조정신과 자긍심을 드높이고 제주특별자치도 종친회 위상을 높였으니, 이는 족장님의 평소 숭조정신과 나눔의 철학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그 고귀한 우리 종친 모두가 오래도록 기리고 후대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자랑스러운 가락 제주인”으로 전국 700만 가락 종친들로부터 칭송(稱頌)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