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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장군 훈련원정 김안방((禦侮將軍 訓練院正 金安邦) 행장

 

김해김씨 안방계문중회 계파조 휘 안방(安邦)할아버지는 입도조 좌정승공의 8세손이시다. 禦侮將軍 司僕寺正 휘 계찬(繼瓚)할아버지의 손자이며, 처사 휘 용지(用砥)할아버지의 아들 8형제 중 6남이시다. 공은 용지할아버지와 할머니 탐라 고씨 사이에서 선조 12년(1579년) 9월에 출생했다. 공의 8형제는 모두 문장과 무예가 뛰어나 8형제 모두 종3품 이상의 품계를 받아 제주8방이라 불리며 김해김씨 문중을 도내 제1의 가문으로 위세를 떨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제주8방(濟州八方)은 인방(仁方), 충방(忠方), 의방(義方), 필방(弼方), 예방(禮方), 안방(安方), 신방(信方), 지방(智方) 여덟 분의 할아버지를 함께 지칭하는 호칭이다.

 

제주8방 중 여섯째인 공은 특히 시서(詩書)에 통달하고 승마와 궁술에 능통하여 선조 32년(1599년) 약관 21세에 무과에 장원급제 했다(국조방목, 급제선생안 등에 수록). 무과 장원급제로 약관에 출사한 공은 오위(五衛)의 종6품 부장(部將)을 거쳐 정5품 사직(司直), 훈련원(訓練院)의 종4품 첨정(僉正), 종3품 부정(副正)을 거쳐 정3품 당하관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정(訓練院正) 등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공이 입조한 시기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로 조선사회가 크게 쇠락하고, 국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무관으로 훈련원 등에 봉직하면서 사회질서 유지와 국력 신장에 진력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을 비롯한 제주8방의 약진은 김해김씨 좌정승공파 가문의 안정과 단합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조선 건국초기 입도조께서 역신으로 몰려 제주에까지 유배될 정도로 가문이 피폐해졌지만 입도4세 봉(奉), 검(儉) 두 할아버지가 예조참판과 호조참판에 제수되면서 가문의 명예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또, 독회, 계찬, 후찬, 용지 할아버지가 제주지역에서 관직에 봉직하며 가문의 명맥을 유지했지만 크게 위세를 떨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입도 8세에 이르러 공을 비롯한 제주8방의 8형제가 빼어난 재능과 실력을 바탕으로 한꺼번에 현달하면서 우리 가문이 제주지역에서 명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런 평판은 가문이 융성하고 단합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제주8방의 출현이 있었기에 우리 가문이 조선말기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그리고 4.3과 한국전쟁의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환경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혈맥을 보전하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김해김씨 좌정승공파의 12계파 가운데 8계파가 제주8방을 계파조로 모시고 있는 것이 바로 제주8방의 위세를 입증하고 있다.

 

공은 퇴임 후 제주로 귀향해 후학육성에 진력하다가 현종 원년(1660년) 10월에 6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묘소는 구좌읍 서김녕리 2337번지에 할머니 숙부인 전주이씨와 합폄(合窆)으로 모셨다가 1998년 5월 29일 문중 총의로 제주시 해안동 문중묘역으로 이장해서 비석을 개수하고 석물을 구비하여 신도를 호위하고 있으며, 시향은 4월 둘째 일요일 봉행하고 있다.

 

공은 숙부인 전주이씨와 사이에 5남을 뒀는데 장남은 병절교위(秉節校尉) 대복(大福), 2남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대해(大海), 3남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대일(大日), 4남은 익복(益福), 5남은 창복(昌福)이시다.

대복공은 영준, 영일, 국옥, 호준, 국준, 웅준 6남을 낳으셨고, 대해공은 제연 1남, 대일공은 수연, 영연, 제 3남, 익복공은 명준 1남, 창복공은 명신, 명현 2남을 낳으셨다.

공의 자손은 현재 1만 명을 헤아리며 제주도내 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주 거주지는 대복 장남 영준계의 후손들은 안덕면 서광리와 대정읍 일원, 대복 차남 영일의 후손들은 안덕면 덕수리와 성산읍 온평리, 한림읍 귀덕리, 대복 3남 국옥의 후손들은 조천읍 신촌, 함덕리, 구좌읍 김녕, 하도리, 남원읍 수망리, 대복 4남 호준의 후손들은 애월읍 하귀, 고성리, 안덕면 동광리, 대복 5남 국준의 후손들은 안덕면 감산리와 서귀포 일원, 대복 6남 웅준의 후손들은 대정읍 상모리, 서귀포시 회수, 하원리, 한림읍 대림, 귀덕리, 애월읍 곽지리 등이다.

안방 차남 대해 후손들은 서귀포시 중문과 대포동, 안방 3남 대일의 후손들은 한림읍 금악리 일원, 안방 4남 익복의 후손들은 대정읍 상, 하모리와 가파리, 안덕면 사계리, 안방 5남 창복의 후손들은 대정읍 상,하모리, 영락리, 한경면 낙천, 신창리, 한림읍 협재리 등이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에는 모든 계파 후손이 두루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