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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승공파 종친회(左政丞公派 宗親會)는 김해김씨시조대왕(金海金氏始祖大王)의 51세손(世孫)인 휘 만희(諱 萬希:一元景興)를 입제중조(入濟中祖)로 하는 후손(後孫)들이 모여 만든 종회이다.

휘 만희(諱 萬希)는 고려말(高麗末) 충신(忠臣)으로서 좌헌납(左獻納),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시고 삼중대광도첨의(三重大匡都僉議) 좌정승(左政丞)으로 보름을 받았으나 병으로 사양(辭讓)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살았다. 이태조(李太祖)가 조선(朝鮮)을 개국(開國)하면서 다시 좌정승(左政丞)으로 중용(重用)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는 것은 부끄럽다(恥事二君)”하여 나아가지 않자 서기 1393년 제주로 유배(流配)하였다.

그는 손자(孫子) 예(禮)와 함께 제주에 와서 11년간의 유배생활(流配生活)을 마치고 고향인 토산(兎山:월성)으로 귀향(歸鄕)하면서 손자(孫子) 예(禮)를 제주에 남겨 두었다. 그후 600여년이 지나는 동안 4만 2천여 후손(後孫)들이 종친회(宗親會)를 발족시켜 숭조(崇祖), 부종(扶宗), 친목(親睦)을 도모(圖謨)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좌정승공파도종친회(左政丞公派道宗親會) 산하에는 검문중회(檢門中會), 계찬문중회(繼瓚門中會), 후찬문중회(厚瓚門中會), 용지문중회(用砥門中會), 용규문중회(用奎門中會), 용호문중회(用瑚門中會), 인방문중회(仁邦門中會), 충방문중회(忠邦門中會), 의방문중회(義邦門中會), 필방문중회(弼邦門中會), 예방문중회(禮邦門中會), 안방문중회(安邦門中會), 신방문중회(信邦門中會), 지방문중회(智邦門中會), 대판지회(大阪支會), 부산광역시지회(釜山廣域市支會) 및 함덕지회(咸德支會)가 있다.

종친(宗親)들은 전도(全道)에 골고루 산재(散在)되어 살고 있으나 약 그중 50% 이상이 제주시에 거주(居住)하고 있다. 이는 많은 변란(變亂)과 현대사회(現代社會)의 급속(急速)한 변천(變遷) 속에서 종친(宗親)들이 도시로 많이 이주하였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그러나 수백년간을 한 마을에서 터전을 이룬 것이 특징적(特徵的)이라고 할 것이다.

검문중회(檢門中會)는 조천, 신엄, 백개(이호), 대정 등지에서 일가(一家)가 번성(繁盛)하였으며, 후찬문중회(厚瓚門中會)는 조천, 애월, 한경, 한림 지역(地域)에서 용규문중회(用奎門中會)는 곽지, 애월, 한림, 용담, 해안 지역(地域)에서, 용호문중회(用瑚門中會)는 화북, 월림, 외도지역(地域)에서, 인방문중회(仁邦門中會)는 애월, 행원, 한동, 펑대, 함덕, 종달, 신엄 지역(地域)에서, 충방문중회(忠邦門中會)는 한림읍 이루언, 애월읍 일원, 노형, 용담, 송당, 와산, 화북지역(地域)에서, 의방문중회(義邦門中會)는 납읍, 애월 지역(地域)에서, 필방문중회(弼邦門中會)는 조천, 신촌, 함덕, 와흘, 하귀 지역(地域)에서, 예방문중회(禮邦門中會)는 애월, 곽지 지역(地域)에서, 안방문중회(安邦門中會)는 서귀포, 중문, 안덕 감산, 대정, 무릉, 한림, 애월, 조천, 구좌 지역(地域)에서, 신방문중회(信邦門中會)는 중문, 색달, 사계, 김녕, 한동, 함덕 지역(地域)에서, 지방문중회(智邦門中會)는 거로, 2도1동, 조천, 우도 지역(地域)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