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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金貞鉉)

 

김찬현(金贊鉉)의 처로 신촌리에 살았다. 친정에서 규중지범(閨中之範)을 익히고 시집와서 남편을 섬기고 시부모를 공경하며 자녀 훈육에도 힘썼으므로 동네 사람들이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는 시가의 윗대를 상고하니 시증조모, 시조모가 대를 이어 효와 열의 행적이 현저하였으므로 정조 5년(1781년)과 순조 6년(1806년)에 각각 포양(褒揚)의 완문이 내렸는데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완문첩(完文帖)이 좀 먹고 떨어져 나가 그 효열의 행적을 전할 수 없으므로 고종 17년(1880년) 백낙연(白樂淵) 목사에게 이 사실을 아뢰어 재발급을 청하니 목사가 전 완문을 대조하고 완문을 만들어 아뢰어 “한 집안에 두 부인이 극효(克孝)하고 극열(克烈)하였음은 고금에 드문 일이니 심상한 일이 아니다. 이같이 하늘이 낳은 정범(貞範)은 실로 뛰어난 일이니 그 후손에 부역을 면제하는 상전(常典)에 따라 완문을 만들어 주는 바이다.”하였다.(완문 조천읍지)

 

▲ 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