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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김재옥(金在玉)의 처 허씨(許氏)

 

열녀 허씨는 입도조 좌정승공 19세손 가선대부 행요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김재옥(金在玉)의 처이다. 본관은 양천이고 유생 허정진(許正鎭)의 딸이다. 성품이 정숙 근면하여 시가(媤家)를 섬기어 슬하여 3남 1녀를 두어 대림리에 살았다. 고종 14년(1877년)에 남편이 병으로 누었으므로 구환(救患)하려고 백방으로 정성을 다하였으나 효험이 없어 급기야 사경에 이르자 부인이 단지(斷指)하여 수혈하니 소생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여 이 사실을 관에 보고하자, 당시 백낙연(白樂淵) 목사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종 15년(1878년)에 완문(完文)을 내렸는데 이르기를 “이 완문을 만들어 주는 일은 면에서 보고하 ㄴ바를 보니 대림리(大林里) 김재옥의 처 허소사(許召史)의 지조 있는 행적에 대해서였다. 그는 어려서 가난한 집안에 시집왔으나 규중의범(閨中懿範)인 정녀의덕(貞女之德)이 뛰어나 품팔이를 하면서도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으니 멀리 떨어진 섬에서 과연 순수하고 아름다운 몸가짐이다. 지난 4월에 남편 재옥이 병을 얻어서 점차 위독하여 5월에 이르러 숨이 끊어져서 모두 여망이 없다 하였는데 그는 단지(斷持)하여 수혈하니 능히 일루의 목숨이 이어졌다. 이는 여염집 여자로서 이같이 뛰어난 행동에 모든 사람들이 포양지전(褒揚之典)이 있어야 한다고 의논이 돌아보고 한다고 하였다. 오직 허소사(許召史)는 의(義)로써 삼강(三綱)의 마음을 일으켰으니 보고 듣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으랴. 면에서 날마다 보고가 이르지만 이와 같은 말은 없으니 그의 뛰어난 행적에 대하여는 포상지전(褒賞之典)이 없을 수 없어서, 이 완문(完文)을 우선 만들어 주고 그 자소에게는 연호잡역(烟戶雜役)을 영구히 견감(蠲減)하도록 한다.” 고종 15년 무인 8월 목사 수결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