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제목 없음

 

 

수리답(水利沓)을 개척한 김광종(金光宗)

 

김광종(金光宗)은 입도조 17세손으로 저지리(楮旨里) 귀정(貴鼎)의 아들로 정조 16년(1792년)에 태어났다. 천성이 총명하여 젋은 때부터 양태(凉太:대로 엮은 갓) 장사로 육지를 출입하였다. 양태의 판로가 막히어 대량의 양태 재고품이 있었는데 1834년(순조 34) 순조임금이 돌아가시자 좋은 값으로 팔려 나갔다. 이어서 헌종 15년91849년) 헌종 임금의 국상때도 양태 시세가 좋아서 부자 소리를 들었다.

그는 육지 출입하면서 하천을 이용한 수리답(水利沓)을 보고 고향에서 화순천(和順川)을 보수(洑水)를 하여 수리답을 만들 것에 착안하여 관(官)과 몽리 주민에게 제의하였다.

관에서도 그의 재간과 재력을 믿어 허락하였으므로 당시로서는 석벽을 뚫어 수로를 만드는 게 난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털어 독한 소주(燒酒)에 불을 붙혀 암벽을 분쇄하여 완공하니 만여평의 문전옥답(門前沃沓)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가 고종 12년(1875년) 84세로 타계하자 몽리 주민들이 그 공덕을 생각하여 화순천 수로 언덕에 ‘통정대부 김공광종 영세 불망비(通政大夫 金公光宗 永世 不忘碑)’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산을 뚫고 물을 당겨서                                 穿山引水

한라산 서쪽에 논이 시작되었다.                     漢西開始

자기 재산을 많이 써가며                              多費己財

후세를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以裕後世

우리가 향기로운 쌀밥을 먹게됨은                   食我香稻

공의 덕분에 기인한 것이입니다.                     賴公德基

공덕은 소부(召父)¹에 비길 만하므로               功擬召父

해마다 전조(田祖)²에 비옵니다.                      歲祈田祖

 

1)소부(召父): 한나라 때 召信臣. 지방관리로 가나서 善政하므로 어버이처럼 여겼다.

2)전조(田祖):농사의 神으로 神農氏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