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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시정(司僕寺正) 김계찬(金繼瓚)

 

김계찬은(金繼瓚)은 입도조 좌정승공의 6세손이다. 부친은 김독회(金禿廻) 모친 구주정씨(九州鄭氏)로 성종 9년(1478년)에 장자로 태어났다. 연산군 7년(1501년) 신유식년(辛酉植年:3년마다 호구단자를 만듬) 단자(單子)에 의하면 24세때 기관(記官)이고 동도(東道) 도의이리(道衣離理:지금 上道 下道를 합친 마을)에 살았는데 증조부 김예(金禮)도 호장(戶長:鄕職의 우두머리)이고, 조부 김봉(金奉)도 호장, 부친 독회(禿廻)도 호장이다. 외조부 정진음(鄭眞音)이, ‘조부 김봉이 이미 90세가 지났으니 은전(恩典)을 내릴 것을 임금께 진술하여 아뢰었다.’고 적혀있다. 호장 김봉(金奉)은 태종 9년(1409년)생으로 이때 93세인 까닭이다. 이때 예조에서 아뢰어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서하였으므로 돌아가시자 선흘경 알밤오름에 예장(禮葬)하였다. 그 후 계찬은 무과에 급제하였다.

 

중종 35년(1540년) 장림(長琳) 목사가 부임하여 방어시설을 강화하기 위하여 김녕방호소를 도의이리(道衣離里)로 옮기어 별방진(別防鎭:특별히 방어한다는 뜻으로 제주목 동쪽의 거진이다.)이라 하였는데 김계찬이 63세때 조방장(助防將:鎭將)으로 임명되어 별방진 정비에 임하였다. 계찬도 수직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어모장군(禦侮將軍)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서하였다.